전주 전동성당 공식명칭은 천주교전동교회와 풍남문 방문


천주교전동성당(전주 전동성당, 풍남문) 둘러보기

전주 한옥마을 여행 중 가족과 함께 전동성당을 방문하였습니다.
신앙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부모의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우는 사건으로 순교했던 터가 바로 전동성당이라고 합니다. 순교자의 믿음을 돌아보며, 믿음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전동성당(사적 제288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동) 소재.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당.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 (1981년 9월 25일 지정)이며, 전동성당 사제관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2002년 4월 6일 지정)다. 정식 명칭은 '천주교 전동교회'입니다.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최초로 순교했던 터이다. 
정조의 명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고 전주 풍남문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1889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보드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14년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여 완공되었다.
도로변 쪽 구석에 윤지충 성상이 있다.

전동성당은 기본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조에, 비잔틴 양식 돔으로 마무리 되어있다. [나무위키 발췌]

신해박해
1791년(정조15년)에 윤지충(尹持忠) 바오로와 권상연(權尙然) 야고보 등이 제사를 거부하고 부모의 신주를 불태운 사건.
16~17세기 동양에 대한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방식은 가톨릭의 교세 확장에는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으나, 일각에선 이들의 선교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등은 조상의 제사를 용인하는 예수회의 방식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했고, 예수회는 동양의 제사란 우상숭배가 아닌 하나의 문화적 관습이라고 옹호했다.
윤지충(바오로)
윤지충(尹持忠)은 1759년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로, 정약용과는 내종사촌 관계이다. 24세의 나이로 진시에 합격한 윤지충은 이후 정약용의 권유로 중국에 갔다오게 돠고 거기서 견진성사까지 받고 온다. [나무위키 발췌]



 

 

전동성당 내부(입장은 아니됩니다)


유럽 성당의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웅장하고 고풍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로마네스크 양식, 비잔틴 양식의 돔이 어우러진 전동성당의 모습(이곳은 전주입니다~)

 

비잔틱 양식의 돔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의 모습이 건물과 어우러져 긴 세울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전동성당의 옆 모습(유럽에서 많이 보이는 로마네스크 양식 입니다)
성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비잔틴 양식의 돔입니다.

 

 

전동성당의 야경은 엄숙함과 평안을 전해줍니다.

 

 

경기전에서 바라본 전동성당


* 전동성당은 현재 보수 중이랍니다. (보수 기간: 2020. 05.04 ~2020. 12.29) 
  2021년 1월 20일 방문 하였는데 공사중입니다.


1914년 건립된 호남지역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을 혼합한 종교시설인 전주 전동성당이 5월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간다. 전주시(시장 김승수)는 총사업비 10억 원을 들여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자 사적 제288호인 전동성당 외벽과 종탑, 첨탑에 대한 해체 보수 공사를 시행한다고 4월 1일 밝혔다.

전동성당은 외벽이 훼손되고 종탑과 좌우 첨탑 부분이 부식된 데다 누수 현상까지 나타나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카톨릭신문]

 

풍남문(정조의 명에 따라 주교 신자였던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사형을 선고받고 전주의 풍남문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남부시장(야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풍남문을 볼 수 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방문지(다음지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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